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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영 연재詩] 11월의 첫 날에

김해영 시인 haeyoung55@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3-05 11:43

11월의 첫 날에 
-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날에

또닥또닥 빗줄기가 대지를 두들긴다
남루한 몸을
굽은 지팡이에 의지하여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망설임과
또 어둠을 헤쳐야 하는
두려움이 배어있다
슬픔이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이며
좌절이 새로운 희망의 싹이라는 걸
까마득히 모른 채
걸어온 미망의 길
타닥타닥 빗줄기가 새벽을 깨운다
긴 밤 어두운 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야경꾼의 얕은 기침소리
저 짙은 절망 끝에는 여명이
혼란의 뒤에는 정돈이
기다리고 있겠지
아무도 손 내밀지 않은
절대 고독의 문을
옹이 박힌 손으로 또옥또옥 두드린다

 

<시작 메모>

악의 꽃이 성급하게 달리던 발목을 거머잡는다. 어쩔 것인가, 쉬어 가야지.
살다 보면 맑은 하늘도, 오늘처럼 울음을 쏟아내는 하늘도 만난다.

야경꾼의 순라 도는 소리, 맹인의 지팡이 소리 같은 빗소리가 어두움을 가른다.

슬픔의 바다에 떨어지는 유성 같은 기쁨과 아득한 불행의 폭포로 추락하다가 문득 비상하는 행복의 포말, 긴 인고의 터널 끝에 만날 평화의 작은 촛불을 향해 옹이 박힌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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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놀미욤 들에게 물으니저 수채화 물감빛 하늘에서 오지 연둣빛 혀로 답한다아니야, 샛바람이 봄내를 싣고 와 겨울을 휘적여 놓던데회색빛 가신 하늘이 고개를 가로젓는다웬 걸,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여인네 옷자락에서 묻어나는 거야바람이 속삭인다 뽀초롬 연둣빛 혀를 물고 있는 들과한결 가벼워진 하늘빛,향내를 품고 있는 봄바람이정숙한 여인네를 꼬드겨 일으킨 반란인 걸 어드메서 오는지어느메쯤 떠나갈지아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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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엔바람이 불었소미친 듯이 불었소땅 위의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릴 듯이바람은 그렇게 불었소 헛된 아집의 각질과 빛 바랜 이름을명찰처럼 달고 있는 나무 둥치채찍처럼 후려치는매바람을맨 몸으로 견디어야만 했소 속이 꽉 찬 참나무처럼반듯하고튼실하게 살아왔다고허세 부리던 삶의 쭉쟁이를 아프게 아프게 훑어내야 했소 광풍이 헤집고 간 숲은고요하오……가만,귀 기울여 보오바람의 발자국이 또 다가오는 듯하오 <시작메모>간밤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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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영 시인